국민일보(2006/08/18)에 '포항건설노조 파업 50일째 “경제파탄” 시민들 화났다'라는 기사가 실리다. 다른 신문들도 대부분 같은 류의 기사들이 실렸다. 현 시점에서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 중의 하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단상 1.
1. 시민사회단체라는 용어의 의미 변화와 담론 형성과정
우선 용어적으로 살펴보자. 장기파업에 화난 '시민.사회단체' 궐기 대회와 '노동단체' 결의대회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여기서 '시민.사회단체'라는 용어의 의미가 기존의 의미와 성격을 달리 한다는 것이다. 즉 기존의 시민.사회단체라는 의미에는 민중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 의미가 보수적 의미의 시민.사회단체로 변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건설노조는 이를 '주로 관변단체와 포스코와 직간접 관련을 가진 단체이거나 납품업체와 연결된 지역인사들이 주도한 집회'로 표현하고 있다. 서구적 의미의 시민.사회단체로 변하고 있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에 반해 노동자를 대변하는 단체는 '노동단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차이를 만들고 있다. 향후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용어들이다. 물론 지배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언론의 담론 형성과정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러한 담론 형성이 가능한 주체, 즉 보수적 시민.사회단체의 존재가 전면에 동원되고 있다는 것이다.
2. 시민사회단체의 주체
이번에 참가한 포항지역 128여개 시민사회단체에는 포항상공회의소,포항지역발전협의회 등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외에 죽도시장과 중앙상가,해수욕장 상인,이미용업,목욕업,택시업계,음식숙박업 등 생계형 자영업주들이 상당수 참가했다'라는 기사를 싣고 있다.
주체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포항상공회의소, 포항지역발전협의회 등과 같이 고용주들을 대표하는 단체라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상인, 이미용업, 택시업계, 음식숙박업 등 생계형 자영업주(자영자)라는 측면이 있다. 지금까지는 자영업주를 사회분석에서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하지만 경제활동인구에서 전체 취업자 중 임금노동자:무급가족종사자:자영업주의 비율은 6:1:3(고용주 0.7+ 자영자 2.3) 정도다. 그리고 자영업주의 비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자영업주들은 시장경제 구조에서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한편 그 내부에서 자본(자영업주)끼리 경쟁하는 구도 속에 놓여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주체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이미 그들은 형성이 아니라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으며 현 시점은 자영업주(고용주, 자영자)들이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기위해 시민.사회영역에서 적극적인 행위 주체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3. 동원의 내용
이들이 주장하는 주요 내용은 장기파업으로 지역경제를 파탄내고 서민생활에 불편과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내용을 뜯어보면 핵심적으로 '파업'이 '지역' '경제'를 어렵게 하고 '서민' '생활'에 '손해'를 끼친다는 것이다. 결국 자영업주들의 경제적 손실인데, 문제는 이 과정에서 서민생활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지역경제를 파탄 냈다는 것에서 우선은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지역 기반의 자영업주라는 주체들이 경제적 이익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기본적으로 경제적 측면을 따진다면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기존의 조합주의적 노동자 파업과 내용상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대상들, 즉 주체가 그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성격이 전혀 다르다. 건설노동자들과 같이 하루하루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과 고용주, 자영자들로 구성된 자영업주들의 경제적 이익은 힘의 논리에서 차원을 달리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이익이 이 지역에서는 먹히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러한 과정이 가능한 것인가? 그것은 동원방식과 동원구조라는 측면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4. 동원방식 및 구조
먼저 동원방식에서 보면 경제적 이익이라는 동원 내용이 서민생활이라는 식으로 표현되면서 서민이라는 동원주체를 끌어들이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어떻게 5만명(경찰 추산 2만명)을 동원하는 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 하는 지점이다. 인구 50만의 도시에서 5만명을 동원할 수 있었다는 점. 일반적인 사회에서는 아무리 탄탄한 조직을 가지고 있더라도, 또는 사회적 연결망의 밀도가 아무리 높다 해도 이러한 동원이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관계자는 포항시가 관내 통장을 통해 주민들을 동원한 관제 데모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즉 기존의 보수적 국가통제제도인 통반장 제도가 현 시점에서 다시 가동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국가에 의한 직접적이고 물리적 통제 방법이 아닌 시민에 의한 간접적 통제 방법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동원주체가 국가에서 자영업주라는 자본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이것이 의미하고 있는 것은 시민사회 영역의 독점구조가 해체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부분은 논외로 함)
이러한 동원내용, 동원주체, 동원방식을 그림으로 그리면 경제적 손실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자영업주들이 주체가 되어 국가통제제도인 통반장들을 이용해 서민들을 끌어들이는 구조다. 여기서 서민은 참 애매한 개념이다. 구태여 자영업주들 중 서민이라면 생계형 자영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노동자들도 서민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아니 서민하면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노동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노동자가 이러한 동원 구조 속에 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들을 서민이라는 이름으로 자영업주들의 이익추구 구조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조합과 같은 노동단체는 그들만의 단체라는 선 긋기의 과정에 있는 것이다.
단상 2.
1.
문제는 이러한 동원구조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는가 하는 원인 및 형성 과정적 측면, 그리고 현재적 의미가 무엇이며 향후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가 하는 결과적 측면에 있다. 이는 어떻게 1) 포항이라는 ‘지역’에서는, 2) 자영업주들이 동원 주체로 나서서, 3) 국가제도를 이용해 집합적 행동을 하고, 4) 서민들을 동원할 수 있었나 하는 지점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2.
포항은 포항제철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노사관계적 측면에서 본다면 지역적으로 포철의 노동자들이 집합적으로 거주하고 있기에 포철 중심의 노동조합이 건설되고 이와 대립적인 사용자 단체가 형성되는 것이 정상이다. 이러한 예는 광산지역의 노사관계에서 전형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고된 광산 노동과 이에 맞선 노동자 계급의 형성과 노동자들의 조직인 노동조합의 설립, 그리고 계급적 노동조합 운동의 형성.
하지만 포항제철 노동자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포항제철과 이 지역의 하청노동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건설노동자들이 그 주체가 되고 있다. 그리고 건설노동조합은 울산, 여수, 광양 등의 노동자들이 포함되어 있다(이 부분은 이 지역 플랜트 공장과 건설노조의 특성이기도 하다. 논외로 함). 이에 반해 지역적 기반의 포항 시민은 다른 행동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잠정적 결론은 포항은 포항제철이라는 기업도시로의 완성단계에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중요한 지점은 어떻게 이 도시가 기업도시가 되었는가 하는 지점이다. 아마도 2-30년 동안 그 과정은 진행되었을 것이다. 포철이 이 지역에 들어오면서 자영업주들이 생기고, 한편으로 노동자로 2-30년간 일하다 퇴직한 노동자들은 이 지역에서 자영업주가 되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그들이 한편으로는 통반장의 역할을 하기도 하면서, 그 과정에서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하고, 포철과 시민사회가 통합되는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가정도 가능하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포철을 중심으로 기업의 이익이 우선시되고, 그것은 기업이 잘 돼야 지역이 잘 살고 성장한다는 성장 논리 속에서 국가 이기주의로 몰아갈 수 있다. 점점 기업->지역->국가 성장 우선이라는 발전주의적 논리의 극단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진보도 마찬가지의 논리를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있다. 이러한 측면은 논외로 함). 이 과정에서 건설노조와 같은 소수는 다수에 의해 억제될 수밖에 없고 다시 억압과 통제가 정당화되는 사회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사회 자체를 보수화하는 경향 또는 파시즘으로 몰고 갈 수 있는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
지역운동이 활성화되었다고 떠들어대는 일본 사회가 오히려 우경화되는 경향. 신문에서는 일본의 그러한 우경화를 욕하지만 우리도 먼 장래의 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이러한 과정은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일이다.
이어지는 내용